2025. 9. 13. 07:00ㆍ역사

로마는 공화정 때부터 공격적으로 영토 확장을 하였습니다.
한니발이 있는 카르타고와 포에니 전쟁, 마케도니아 정벌 그리고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 등으로 로마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지중해 해안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시기 로마는 시칠리아, 카르타고, 그리스, 북아프리카와 같은 지중해 주요 지역들을 모두 장악하여 지중해를 둘러싼 강력한 해양 제국이 되었고 로마는 지중해 전역을 통일하고 지중해를 "Mare Nostrum" 즉 "우리의 바다"라 불렀으며, "로마의 호수"라는 표현도 고대 로마 제국 시절 지중해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제정(帝政)에 들어서게 되면서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역시 활발한 영토 확장을 진행하였으나 영토 확장이 로마에게 가져다주는 득보다 손해가 많아질 것이라 생각하여 제국의 확장을 멈추라는 유훈을 남기게 떠나게 됩니다.
이는 3개 군단이 전멸한 토이토부르크 전투의 패배, 게르마니아(현재 독일과 그 주변지역) 원정 실패가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으며 아우구스투스 이후 황제들은 그의 유훈을 이어받아 브리타니아(현재 영국)를 제외하곤 이전처럼 대규모 영토 확장을 위한 원정을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약 100년이 지난 후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는 아우구스투스의 유훈과는 다르게 다키아(현재 루마니아) 원정과 공격적인 동방 확장 정책으로 로마제국 최대의 영토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때 로마 제국의 영토는 서쪽으로는 이베리아반도부터 동쪽으로 카스피해 연안까지, 북쪽으로는 브리타니아 중부부터 남쪽으로 이집트, 북아프리카까지 방대한 영토를 완성하게 되는데, 이 시기는 로마의 전성기로 알려진 팍스 로마나(1세기~2세기, Pax Romana) 시기 중에서도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 5현제(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다스리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외형적인 제국의 성장 확장과 달리 내부는 균열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는 데 하드리아누스(재위 117~138)황제는 영토의 확장보다는 내실을 다지기 위해 우선 선대 트라야누스 황제의 공격적인 영토 확장 정책을 포기하고 방어 정책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는 일부 속주에서는 군단을 철수시켰으며 야만족과 대치하는 곳에서는 방어를 위한 방벽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건설된 것이 바로 오늘 살펴볼 브리타니아의 하드리아누스 방벽입니다. 이밖에도 독일 북서부에서 도나우 강까지 이르는 500km의 게르마니아 방벽도 이 시기에 건설되었습니다.
게르마니아 방벽은 고대 로마 제국이 게르마니아 지역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경계선 체계, 즉 리메스(limes) 중 하나입니다. 특히,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와 인페리오르 지방을 구분하며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따라 위치하였고, 군사적 방어와 국경 감시를 위한 감시탑과 주둔지가 배치된 선형 방어 구조였습니다. 게르마니아 방벽는 단순한 견고한 벽이 아니라 감시탑, 목책, 참호, 돌벽 등이 혼합된 형태로 지역 지형에 맞게 설계되었으며, 주로 라인강 주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1세기부터 5세기까지 존재했으며, 3세기 이후 로마 군대가 철수하고 게르만족의 침입이 잦아지면서 점차 방어선이 축소되고 강화되었습니다. 갈리에누스 황제 시기에는 이 방벽 안쪽에 사는 게르만족에게 방어 임무를 맡기는 전략도 시행된 적이 있습니다.
하드리아누스 방벽은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재위 117~138년)의 명령으로 서기 122년경부터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경계 부근에 건설되기 시작해 약 6년 만에 완성된 길이 약 118km의 방벽입니다.
주요 목적은 로마 제국이 점령한 브리타니아(현대의 영국 북부)의 북쪽 국경을 명확히 하고, 북방의 원주민 세력인 픽트족(Picts) 등 게일족 부족들이 일으키는 반란과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방벽은 국경을 물리적으로 표시해 제국의 군사적 방어를 강화하는 동시에, 행정적, 경제적 안정성도 확보하려는 전략적 의미도 있었습니다.
하드리아누스 방벽은 길이 약 118km, 평균 높이 4~6m였고, 주요 구간에 요새와 망루가 설치되어 로마군이 신속하게 방어 태세를 갖출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북쪽에는 해자가 위치해 적의 접근을 어렵게 했고, 방벽을 따라 군사 이동을 지원하는 도로도 건설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북단 국경이자, 브리타니아 지역에서 로마 행정과 통치를 공고히 하는 중요한 경계였습니다. 방벽은 단순 방어선을 넘어 로마 제국의 권위와 기술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자, 제국의 통치 안정 및 문화적 영향력 확산에 기여한 복합적 군사·정치 시설이었습니다. 이후 서기 5세기 서로마 제국 쇠퇴와 함께 로마군 철수 후 기능이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유적지로 남아 로마의 국경 방어 전략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유산으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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