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벨리스크 (Obelisk)

2024. 9. 28. 07:00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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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obelisk, ὀβελίσκος 오벨리스코스) 또는 방첨탑(方尖塔)은 높고 좁으며 4개의 면을 지닌, 점점 가늘어지는 피라림드 모양의 꼭대기를 지닌 기념 건조물이다. 고대 방첨탑은 한 덩어리의 암석으로 만들어졌다. '스텔레'라는 말은 고전적인 방첨탑 형태로 새겨지지 않은 기념비에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오벨리스크에는 전승을 기념하거나 왕의 위업을 과시하는 문장이나 모양을 새겼는데, 태양숭배 즉 태양신 라 혹은 호루스와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 중 현재 3개가 로마에 있고, 이집트 본고장에 있는 건 6개뿐이다. 이 건조물은 파라오들이 지난 왕을 기념하고 고대 이집트 왕국의 영광을 기념하고 이집트 판테온의 모든 신들을 숭배하기 위해 파라오들이 의뢰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벨리스크는 보통 쌍으로 만들어져 신전의 입구에 놓였고,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라’에게 바쳐졌다.

이집트 룩소르 카르낙 오벨리스크

 
로마제국과 유럽 제국주의 시대에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는 서구로 약탈되었으며, 로마에 있는 오벨리스크 5개에 대하여 알아 보았습니다.
 
1. 라테라노 대성당의 오벨리스크
로마에 있는 가장 크고 높은 오벨리스크 중 하나인 라테라노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400년경 이집트의 카르낙에서 파라오 투트모세 3세가 의뢰해 그의 손자 투트모세 4세 시대에 완성됐다. 라테라노 오벨리스크는 투트모세 3세가 자신와 아버지 투트모세 2세를 기리기 위해 의뢰했던 2개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였지만, 자신이 죽은 다음에야 완성됐다. 완성 후 라테라노 오벨리스크는 아문 대사원의 동편에 놓여졌다.
4세기 초에 라테라노 오벨리스크는 배에 실려 나일강을 통해 알렉산드리아시로 옮겨졌고, 수십 년 후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가 이것을 로마로 이전시켰다. 원래 무게가 413톤이 이르렀던 이 오벨리스크는 시간이 흐르면서 부분적으로 무너져 복원 작업을 거쳐 현재 300톤이 됐다.
로마는 1580년대 후반에 라테라노 오벨리스크를 재건하면서 위에 금속 십자가를 얹었고, 현재 있는 산 조반니 광장으로 옮겼다.

2. 성 베드로 광장의 오벨리스크
로마는 바티칸 시티의 심장부에 서 있는 이 기념비를 기원 37년에 이집트에서 가져왔지만, 이 오벨리스크는 알려지지 않은 파라오의 의뢰로 그보다 약 2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오벨리스크가 로마시보다 훨씬 오래 됐다는 얘기다.
(미치광이 폭군으로도 악명 높은) 황제의 이름을 따서 ‘칼리굴라의 오벨리스크’으로도 알려진 이 오벨리스크는 독특하게도 네 면에 상형문자가 없다. 이집트 태양신앙의 중심지로 고대 그리스어로 ‘태양의 도시’라는 뜻의 헬리오폴리스에 있던 이 오벨리스크도 태양신에게 헌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오벨리스크를 바티칸 시티로 옮기기 위해 배가 특별히 건조됐지만, 무게가 약 326톤, 높이가 약 40미터인 이 대형 오벨리스크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칼리굴라 황제는 이집트 정복을 기념하고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 황제를 기리기 위해 이 오벨리스크를 로마로 가져와 황제들의 개인 경기장 앞에 놓았다. 그 두 황제에게 헌정된 비문이 오벨리스크의 옆면들에 새겨져 있다.
1817년 성 베드로 광장에 해시계 눈금을 만들어 이 오벨리스크의 그림자로 정오를 표시할 수 있게 했다. 중세 시대에는 십자가를 설치하기 전에 원래 오벨리스크 꼭대기에 있던 구리 구체 안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재가 들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3. 마쿠테오 오벨리스크
원래 헬리오폴리스의 라 신전에 있던 한 쌍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이며, 현재는 로마의 판테온 앞에 세워져 있다. 사면에 파라오와 태양신 라와의 관계를 자세하게 설명한 상형문자가 있다. 기원전 1278년부터 1213년까지 재위한 람세스 2세 시대 때 만들어졌다.
로마는 이집트를 정복하기 훨씬 전에 일부 로마인들이 섬겼던 이집트 신인 이시스와 세라피스의 신전을 꾸미기 위해 붉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오벨리스크를 이집트에서 가져왔다. 이 오벨리스크도 꼭대기에 있는 십자가 있으며, 1711년에 이탈리아 조각가 필리포 바리고오니가 설치한 십자가다.

4. 플라미니오 오벨리스크
포폴로 광장의 중앙에 있는 플라미니오 오벨리스크는 로마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최초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다. 약 36미터인 이 오벨리스크도 약 기원전 1300년에 제작돼 원래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라 신전에 1000년 이상 있다가 로마의 이집트 정복에 성공한 아우구스투스가 이것을 로마로 가져왔다.
플라미니오 오벨리스크는 당시 만들어진 다른 많은 오벨리스크와 마찬가지로 붉은 화강암으로 제작됐으며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플라미니오 오벨리스크는 유지 보수를 위해 수년에 걸쳐 여러 번 분해 및 재조립됐다. 플라미니오 오벨리스크는 1587년에 세 동강이 난 채 라테라노 오벨리스크와 함께 발견됐다. 교황 식스투스 5세는 1589년에 이 오벨리스크를 포폴로 광장에 놓으라고 명령했고, 1823년에 이탈리아 건축가 주세페 발라디에가 사자 상이 있는 하부 지지대로 오벨리스크를 장식했다.

5. 몬테치토리오 오벨리스크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 정복 후 가져온 또 다른 오벨리스크는 몬테시토리오 오벨리스크이다. 약 20미터인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595년과 589년 사이에 통치한 프삼티크 2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는 원래 오벨리스크에 오벨리스크를 아우구스투스를 기리는 글귀가 새겨진 지지대를 만들었다.
몬테치토리오 오벨리스크도 로마의 많은 오벨리스크들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진, 화재 및 1084년 노르만족의 로마 점령으로 많이 손상됐다. 이 오벨리스크는 복원 후 1789년에 몬테치토리오 궁전 정면에 세워졌다.
몬테치토리오 오벨리스크는 아우구스투스가 탄생한 9월 23일 정오면 그림자가 아우구스투스의 평화의 제단 중심축에 떨어지도록 놓여 해시계와 달력으로 쓰였다. 평화의 제단은 아우구스투스를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려는 로마 원로원의 의뢰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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