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5. 06:00ㆍ역사
동양에서는 굶주린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 곡식인 "쌀"을 요구하였으며, 서양에서 굶주린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킬 때 곡식이 아닌 가공된 '빵'을 달라고 했다.
이렇게 동양에서는 가공되지 않은 곡식 자체를 원했으며, 서양에서는 가공된 빵을 원했는 데 이러한 이유에 대해서 식문화와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알아 보았다.
동아시아 농경 문화권에서는 주식인 쌀의 생산과 가공이 주로 농가 단위에서 이루어졌다. 농민들이 직접 벼를 키워 탈곡하고 절구에 찧어 쌀로 만들었기 때문에, 굶주린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곡식인 '쌀'을 직접 요구했다. 쌀로 밥을 짖는 요리법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간단하다.
동양에서 가정마다 부엌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는 서양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이른 편이다. 중국의 경우 기원전부터 부엌 공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기원전 3세기경의 유적지에서 취사와 식사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는 주로 상류층에 해당되며 일반 서민가정에는 아직 부엌 개념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일반 가정에 부엌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송나라(960-1279년) 시기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시기에 주택 구조가 많이 발전하면서 부엌 공간이 집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반면 서양에서는 중세시대부터 곡물 가공의 분업화가 이루어졌다. 농민들은 수확한 곡식 곡물을 지주나 교회 등에 납부하고 돈을 받았으며, 수확한 곡물은 별도의 제분소와 제빵소에서 전문인력이 곡물을 가공해 빵을 만들었다. 빵을 만드는 절차는 밥을 짖는 수준과 차원이 다르게 복잡하다. 쌀과 마찬가지로 밀도 탈곡까지는 동일하지만 밀은 탈곡 후 밀가루로 만들어야 하는 데 이절차가 굉장히 어려우며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밀가루로 가공 후 빵을 굽는 과정 또한 반죽과 굽기등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요리에 필요한 도구 또한 서양의 빵 굽기가 가공 절차가 많기 때문에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반적인 서민의 집에는 이러한 요리도구를 모두 가지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빵을 구입하여 먹었다.
이렇게 제조된 빵은 주로 도시 시장에서 유통되었는데, 당시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많은 이들이 농민이 아닌 임금노동자가 되면서 곡물 그 자체가 아닌 가공식품인 빵을 사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서양에서는 중세 시대(5-15세기경)까지는 부엌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으며,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단순히 벽난로 주변에서 간단한 요리를 했다.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만 별도의 작은 부엌을 갖추고 있었다.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중산층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들의 가정에서 점차 부엌이 생겨났다. 본격적으로 부엌이 일반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중산층이 성장하기 시작한 18세기 이후부터이다.
동양이 서양보다 이른 시기에 부엌 개념이 정착했다고 할 수 있다.
동양에서는 쌀을 밥으로 바로 지어 먹는 식문화로 그리고, 서양에서는 곡물을 가공하여 빵으로 만들어 먹는 식문화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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